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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리

대만과 중국, 그리고 미중 관계의 역사적 맥락

by 지적유희@ 2024. 10. 1.

우리가 한때 북진 통일을 주장했듯, 중국도 대만을 하나의 중국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만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은 미중 관계의 핵심 쟁점 중 하나입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게 된다면, 이는 미국에게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그러한 선례를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대만의 지리적 위치와 중요성

대만은 한반도의 경상도 크기와 비슷합니다. 남한 면적의 약 1/3에 해당하며, 인구는 약 2,300만 명으로 한국의 절반 수준입니다. 대만과 중국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 중국 남동쪽의 복건성과 대만 사이의 대만 해협은 120~130km 정도입니다. 이 거리는 우리나라의 전라남도 목포에서 제주도까지 거리와 비슷합니다. 또한, 중국과 불과 1.8km 떨어진 대만령 금문도는 헤엄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입니다.
이처럼 대만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이로 인해 양안 관계(중국과 대만 간의 관계)라는 용어가 사용됩니다. 역사적으로 대만은 중국과 크게 연관이 없던 시기가 많았습니다. 대만 원주민들은 중국계 한족이 아닌 동남아시아계, 특히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온 오스트로네시아계로 분류됩니다.

대만의 역사적 배경

대만은 대항해시대 이후로 본격적으로 세계사에 등장했습니다. 1590년 포르투갈 선단이 대만을 발견하고, 이를 '포르모사'(아름다운 섬)라 명명했습니다. 이후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차례로 대만을 식민지화하려 했으나, 결국 명나라가 멸망하고 만주족의 청나라가 대만을 점령하면서 대만은 중국 역사에 편입됩니다.
그러나 대만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하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1945년 일본이 패망한 이후 대만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부터 대만은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의 통치를 받게 되었으며, 본격적인 근대사가 시작됩니다.

대만의 내부 갈등: 본성인과 외성인

대만 현대사에서 중요한 개념은 '본성인'과 '외성인'입니다. 본성인은 1945년 이전부터 대만에 거주하던 한족들을 의미하며, 외성인은 1949년 국민당 정부가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피난 오면서 이주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본성인들은 대만 인구의 84% 이상을 차지하며, 외성인은 약 14% 정도를 차지합니다.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 정착하면서 본성인과 외성인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1947년 '2·28 사건'은 이 갈등을 폭발시킨 중요한 사건으로, 이 사건에서 약 28,000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대만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이는 1987년까지 4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국부천대와 국민당의 대만 정착

1949년 중국 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국민당은 대만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국부천대'라고 부르며, 이는 대만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이동하며 대륙 수복을 꿈꾸었고, 이를 위해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며 대륙과의 통일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만 내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대만 내부에서는 대만이 독립적인 정치 실체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본성인 출신의 정치인들이 대만의 정권을 잡게 되었고, '두 개의 중국'이라는 개념이 대두되었습니다.

대만의 정치 지형과 미중 관계

대만의 민주화 이후, 본성인 기반의 민진당은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반면, 외성인 기반의 국민당은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며 대륙과의 통일을 꿈꾸었습니다. 이러한 대립 속에서 대만의 정치 지형은 변화하였고,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는 세력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대만을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며 대만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 시절에는 '타이완 동맹 보호법'과 '타이완 보증법' 등을 통해 대만을 지원하였으며, 조 바이든 정부 역시 대만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끝까지 대만을 지켜줄지는 미지수입니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반도체 기업인 TSMC의 대체자를 찾고 있으며,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일본 등을 통해 간접적인 지원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미중 전쟁 가능성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투키디데스는 신흥 강대국이 부상하면서 기존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그 결과 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간의 전쟁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이미 역사적으로 16차례나 발생했으며, 그중 12차례는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중국과 미국 간의 갈등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하락하고, 내부적으로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의 불안감이 전쟁을 초래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1939년 독일과 1941년 일본의 사례처럼, 강대국이 퇴조할 때 전쟁의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대만 간의 갈등은 향후 미중 관계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대만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글로벌 패권 경쟁의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미중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불확실하지만,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점점 더 부각되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의 중심에서 대만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동아시아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냉전 시대의 최전선이었던 한반도 역시, 신냉전의 최전선에 위

우리가 한때 북진 통일을 주장했듯, 중국도 대만을 하나의 중국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만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은 미중 관계의 핵심 쟁점 중 하나입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게 된다면, 이는 미국에게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그러한 선례를 우리는 목격했습니다.